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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전소된 숭례문

나랑께 2008. 2. 11. 11:30

 

 

 

 

1호 숭례문 화재로 전소 (보도자료 정리)

 

210오후 846께 국보1호인 숭례문(남대문)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국보 1 숭례문
이 불에 타 한줌의 잿더미가 되는 데에는 불과 5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 초기 진화 실패

타오르던 불길이 발화 40여분만인 오후 930께 거의 사그라지면서

`훈소 상태'(연기만 나는 상태)가 되자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한때 불이 잡힌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기와 안쪽에 남아있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가 곧 다시 맹렬한 기세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방당국은 오후 935문화재청으로부터 "화재진압이 우선이니 국보인 남대문의 일부를

파기해도 된다"는 협조를 얻어낸 뒤 현판 일부를 잘라내고 본격적인 진화에 나섰지만,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기와 안쪽의 `적심' 부분이 전통 목조건물의 방수처리 공법으로

처리돼 있어 아무리 물을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 결국 붕괴로…

숭례문 지붕을 해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화재 발생 3시간 만인 오후 1150께부터

전격적인 `마구잡이' 지붕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앞서 진화 작업을 위해 뿌린 물이 얼어 붙는 바람에 소방관들이 지붕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 사이 불길은 점점 더 번져나갔다.

자정을 넘어 불은 2층 전체를 휘감아 누각 곳곳을 뚫고 5~10m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댔다.

숭례문 2층 누각은 11 0시58 서울역을 바라보는 뒷면부터 우수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해 삽시간에 붕괴로 이어졌다.

결국 발생 5시간만인 오전 154께 진화 노력도 헛되이 누각 2층과 1층 대부분이

무너지면서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 소방장비 현황

 : 1,2층에 각각 4대씩 소화기 8대가 있었지만, 스프링클러 등 소방장비는 전무

 

불타기전의 숭례문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숭례문.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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