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숭례문 화재로 전소 (보도자료 정리)
2월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 한줌의 잿더미가 되는 데에는 불과 5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 초기 진화 실패
타오르던 불길이 발화 40여분만인
`훈소 상태'(연기만 나는 상태)가 되자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한때 불이 잡힌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기와 안쪽에 남아있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가 곧 다시 맹렬한 기세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방당국은
파기해도 된다"는 협조를 얻어낸 뒤 현판 일부를 잘라내고 본격적인 진화에 나섰지만,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기와 안쪽의 `적심' 부분이 전통 목조건물의 방수처리 공법으로
처리돼 있어 아무리 물을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 결국 붕괴로…
숭례문 지붕을 해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화재 발생 3시간 만인
전격적인 `마구잡이' 지붕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앞서 진화 작업을 위해 뿌린 물이 얼어 붙는 바람에 소방관들이 지붕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 사이 불길은 점점 더 번져나갔다.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댔다.
숭례문 2층 누각은 11일
시작해 삽시간에 붕괴로 이어졌다.
결국 발생 5시간만인
무너지면서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 소방장비 현황
: 1,2층에 각각 4대씩 소화기 8대가 있었지만, 스프링클러 등 소방장비는 전무
불타기전의 숭례문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