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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평양옥의 보신탕

나랑께 2006. 7. 13. 10:18
서대문의 색(?) 다른 보신탕집, 평양옥 추천 0    스크랩 0
[맛집순례] 2005-10-31 07:00:47



혹시라도 ‘개고기’ 라는 단어를 혐오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얼른 이 페이지를 벗어나시라. 이 글은 개고기에 대한 글이다. 파찌아빠는 고기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사족을 못쓸만큼 좋아하는 입맛의소유자라 개고기 또한 먹기를 즐긴다. “귀여운 것을 어떻게 먹어욧! 짐승 같은...”이라구 파찌아빠에게 따질 사람도 있겠으나 파찌아빠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송아지도 잘먹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중인 커다란 접시 위의 생선과 눈 맞추기도 즐긴다. 닭고기는 선도만 보장된다면 날(生)로 먹기까지 한다. 동물성 뿐만이 아니라 식물성으로 넘어가면 파찌아빠의 입맛은 가히 정도를 지나쳤다 싶을만큼 포악스러워진다. 귀여운 알타리 무우는 물론이고, 깜찍한 앵두에 심지어는 국화나 장미 같은 예쁜 꽃 마저도 마구 먹어치우니 말이다.

파찌아빠가 서론을 길게 뽑는 사이에 안티 개고기 매니아들은 다들 물러갔을 줄로 믿고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어준 이야기를 풀어놓겠다. 개고기 매니아라면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읽어 보시라.

“오늘은 뭘 먹어줄까?”
“글쎄요. 생각해 둔 집이 있습니까?”
“소격동에 있는 ‘달’이면 어떨까?”
“인도 음식보다는 서대문에 있는 평양옥은 어떨까요?”
“평양옥? 뭐하는 집인데?”
“보신탕집인데 개뼉다귀로 우려낸 뽀시시한 국물이 진국이라는 집입니다. 이름에서 부터 느낌이 팍 오지 않습니까?”
“좋다구 한 번 먹어주자구.”

빅머니가 오랫만에 새로운 맛집을 추천하니 파찌아빠야 당연히 좋다구 할 수 밖에...더우기 파찌아빠가 전혀 모르던 집이니 첩보를 접하자마자 구미가 땡길 수 밖에 없었다. 진작에 작당이 되어있던 이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리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려 경찰청 방향으로 뚫려진 7번 출구를 빠져 나오니 어둠에 깊숙히 물들은 서대문 로타리의 풍경이 황량해 보인다. 서대문경찰서를 지나치니 우측으로 길이 뚫려있고 그 모서리에 있는 깡통집에서 요란스런 연기가 피어올랐다. 파찌아빠는 고기를 굽는 냄새에 홀려 그만 발걸음을 멈추었다. ‘쓰읍...꿀떡...쩝’ 하지만 빈 입맛만 다실 수 밖에...길을 따라 끝에 있는 ‘장보고수산’ 끼지 올라가 봤지만 평양집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길을 다시 거슬러 내려오며 샛골목 안 까지 샅샅이 뒤져보니 소방소 맞은편에 있는 샛골목에 절반 쯤 들어선 후에야 비로서 빨간색 바탕에 흰글씨로 ‘보신탕’이라 쓰여진 입간판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에 대문을 들어서니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측으로 주방이 있고 우측으로 ‘ㄱ’자로 꺽여진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으며 방안을 살펴보니 들어앉은 손님이라곤 달랑 두 명 뿐 이었다. 혹시라도 자리를 못잡을까 염려를 하여 예약을 해 뒀던 일이 새삼 쑥스러운 상황이었다. 잠시 후 나머지 두 명이 마저와서 빈자리를 채우니 5인의 맛집순례단이 평양옥을 먹어줄 준비가 다 된 것이다.

배받이살을 청하니 스스로 이모라 칭하는 아줌씨가 와서는 아주 좋은 놈(?)으로 준비해 놨다는 전갈을 전해준다. 먹어보면 깜짝 놀라거라나...대단한 자뻑이다. 하지만 그런 이모가 결코 얄밉지 않았다. 음식점을 차려놓았다면 내 집을 찾은 손님께 최상의 음식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두를 쪄냈으면 딱 좋을듯한 대나무 찜기에 부추를 얇게 깔고는 그 위에 개고기를 살포시 얹어 내왔다. 가스버너에 불을 뎅기니 찜통 아래에 받쳐둔 납작한 냄비 안에서 뽀얀 육수가 김을 솔솔 풍긴다. 수육과 함께 먹어줄 숨 죽인 야채로 깻잎과 대파, 부추가 따로 접시에 담겨서 나왔다. 특이한 것은 개인 당 제공되는 국물이 보통의 개장국 국물처럼 건데기가 실하고 된장과 매운양념으로 맛을 낸 걸죽한 국물이 아니라 닭 삶아낸 물 마냥 뽀시시한 국물에 파 몇 쪽만 띄워서 나왔다. 국물을 떠 먹어보니 사골국과 닭육수를 절반 쯤 섞어놓은 듯한 밍숭미숭 부드러운 맛인데 개고기 특유의 찝찌름한 맛과 냄새가 뒷여운으로 따라 붙었다. 파찌아빠로서도 난생 처음 맛보는 맑은 개장국의 국물이었으므로 열심히 수저질을 해댔다. 쥔장의 동생이며 식당 안에선 이모로 통하는 아줌씨의 주장으로는 개뼉다귀를 하룻동안 곤 국물과 개고기를 삶아낸 국물을 섞은 국물이란다. 국물을 개발하게 된 사연인즉, 날 마다 버려지는 개뼉다귀가 아까워서 하루정도를 푹 고아봤더니 뼈다귀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데나 어쩐데나. 뼈 국물에 개고기를 삶아낸 육수를 섞으니 담담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이 만들어졌단다. 암튼 분칠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소금과 후추, 파로 정직하게 맛을 낸 맨 국물을 내놓는 것을 보니 아직 먹어보지도 않은 고기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이모의 주장으로는 평양옥에서 사용하는 개고기는 전부 직영농장에서 직접 사육한단다.

찜기에 담긴 수육에서 뜨끈한 김이 피어오르니 젓가락이 최면에 걸린 듯 스르륵 움직였다. 금속성의 긴 젓가락을 통해서 전달되는 야들야들 쫀쫀한 감촉이 손아귀에걸려있던 힘을 빼 놓는다. 급한 마음에 된장과 들깨가루, 식초, 겨자, 참기름 등의 맛과 냄새가 강한 것들을 마구 섞어놓은 소스에 고기를 찍어 입안에 넣어보니 역시나 진한 양념의 맛만 입안 가득 퍼질 뿐 개고기의 맛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하지만 야들..쫄깃...살살...부들..사르르한 치감과 설감이 숨 죽이고 있던 파찌아빠의 미각세포를 바씩 긴장시킨다. 얼른 입안을 국물로 헹궈내고 이모에게 소금을 청하여 배받이 중 껍질과 흐물흐물한 부위의 함량이 가장 높은 살점을 골라내어 한 쪽 모서리에 소금을 아주 조금만 묻혔다. ‘오물오물’ 치아의 수직운동을 몇 번 시키고 혀 굴림을 두어차례 하니 입안엔 고기의 흔적은 간데없이 녹녹한 액체만 남은 느낌이다. 역시 만족스러운 식감이다. 하지만 고기를 삶을 때 누린 잡내를 없애기 위해 너무 심하게 노력을 했는지 정작 파찌아빠의 혀 끝에서 느껴지는 고기의 맛은 다소 김 빠진 뜻뜨 미적지근한 맥주 모양으로 싱거웠다. 보통의 입맛이라면, 특히 초보적인 입맛의 소유자라면 만족도가 높았을 깔끔한 맛이지만 강북의 뒷골목과 시장판에서 거칠게 수련된 파찌아빠의 입맛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맛이다. 이런 정도의 맛이라면 소금에 찍어 먹는 것 보단 숨죽인 야채와 함께 양념장에 찍어 먹는 맛이 제격이란 판단이 섰다. 고기 자체의 맛을 최대한 음미하면서 먹어주는 것 보단 비빔밥을 먹어주듯 고기와 야채, 양념의 조화로운 맛을 즐기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뜻이다. 대신 양념장에 혀가 쩔어 제 구실을 못하기 전에 고기를 먹어주는 틈틈히 밍밍한 국물로 입안의 분위기를 수시로 쇄신시켜야 한다.

깔끔한 맛에 취해 한 점, 두 점 고기를 집어먹다 보니 금새 찜통의 밑바닥이 들어났다. 아쉬운 마음에 이모에게 전골 2인분을 청했다. 전골은 맑은 국물에 매운양념과 다량의 마늘로 맛과 색을 낸 뒤 고기와 부추를 얹어 나왔다. 역시나 깻잎이나 들깨가루 같은 전체적인 맛을 확 바꿔 버리는 강한 식자재의 사용을 자재했다. 덕분에 걸죽하고 텁텁한 국물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차라리 생선 매운탕에 가까운 국물의 느낌을 뿜어 내었다. 처음엔 다소 밍밍한 듯도 하지만 고기를 다 건져 먹은 후의 쫄여진 국물 맛이 기대되었다. 그런데 빅머니가 뭐라 투덜대더니만 상의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던 들깨가루를 전골 냄비 안으로 왕창 털어넣는 것이 아닌가. 일순간에 평양옥의 전골은 그냥 그런 집의 평범한 전골로 격을 낮추고 말았다. 괘씸한 빅머니 같으니라고 ㅠ.ㅜ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었건만 다들 평양옥의 맛에 취해 소주 마시기를 게을리 했다. 입이 다섯 인데 소주 5병을 비우기가 아슬아슬해 보였다. ‘각 1병’이란 오랜 묵계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타파해 보고자 파찌아빠가 ‘고추주’를 제조해 마실 것을 제안하곤 청양고추를 뎅강뎅강 분질러서 소줏병 안에 집어 넣었다. 역시나 맵콤한 맛이 소주에 실리니 술이 절로 넘어간다. 안주 삼아 밥 두 공기를 볶아줄 것을 이모에게 청했더니만 전골냄비를 아예 가져가 버린다. 그리곤 큰직한 뚝배기에 새로 국물을 담아다 주고는 가스버너에 불을 붙였다. 볶음밥 두 공기는 정확히 오등분이 되서 나왔다.

다섯 남자들은 기어코 소주 5병을 마셔 각 1병의 전통을 되살리고서야 평양옥을 나섰다. 헌데 평양옥의 셈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 다섯 명이 덩어리 고기로 배받이를 지정해서 5인분 짜리와 전골 2인분, 볶음밥 2공기, 소주 5병을 먹어줬는데 고작 12만7천원이 나왔덴다. 일반적인 계산으로는 메뉴판에 있는 수육이나 도마고기를 먹을 때 보다 덩어리 고기를 지정해 먹는 것이 조금 더 비싸기 마련인데 평양옥에서는 그리하질 않고 인분만 계산해서 수육값을 받았다. 수육이 2만2천원 씩 이니 5인분이면 11만원. 여기에 전골 2인분이면 4만4천원, 소주 5병이면 1만5천원, 볶은밥은 2인분이면 대개 2~4천원 쯤. 어림잡아 계산을 해봐도 17만원이 넘어야 했다. 그렇다면 12만7천원은 어떻게 나온 계산일까. 거꾸로 풀어보니 전골 2인분 값을 빼면 딱 떨어지는 금액이었다. ‘옳지! 전골을 서비스로 계산했구만.’

다섯 남자는 평양옥의 대문을 나서면서 싱글벙글 휫파람을 불었다. 그 바람에는 향긋한 살구향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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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정보 : ‘평양옥’ 찾아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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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평양옥’을 검색해 보니 평양옥 쥔장의 엄니가 팔당에서 20여년간 보신탕집을 했단다. 그 집의 딸이 지난 20여년간 서대문의 좁은 곪목 안에다 터를 잡고 보신탕을 끓였다니 대물림을 한 집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주된 손님층은 30~50대의 남자인 둣. 딱히 예약을 안해도 괜찮지만 저녁 19시 30분 부터 20시 30분 사이에는 빈 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많다. 맛집순레단은 미리 예약을 하고 갔더니만 이모가 무지 반가워하며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

1. 가는길 : 전화번호 02-363-7058.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7번출구(경찰청 방향)로 나와서 서대문 경찰서를 지나자 마자 ‘뚜껑집’을 끼고 우회전. 소방소 맞은편 골목안 맨 끝 오른쪽 집이 평양옥이다. 같은 골목 안에 서대문집, 남원추어탕, 삼오쭈구미 등이 있다. 주차는 알아서 적당히...

2. 메뉴 : 수육, 전골, 무침 각 1인분에 2만2천원. 보통탕은 1만원 특탕은 1만5천원

3. 총평 : 가격대비 맛과 양, 서비스, 청결도 등 두루두루 만족스러운 집이다. 오래된 한옥을 식당으로 사용하면서도 전혀 누추하거나 지저분한 느낌이 없이 깔끔하고 살뜰하게 해놓은 것을 보니 쥔장의 성품을 짐작하겠다. 파찌아빠가 서대문이란 동네를 맛동네로 인식하는데 큰 힘을 보태는 집이다.

4. 파찌아빠 따라먹기 : ‘설구’를 아시는가? ‘雪拘’라고 써 놓으면 짐작을 하실라나? ‘눈 설’에 ‘개 구’를 붙인 조어이다. 말 그대로 눈 내리는 날 먹어주는 개고기를 뜻한다. 파찌아빠가 눈 내리는 날 개고기를 먹어주게 된다면 필시 ‘평양옥’이리라. 왠지 그러고 싶다. 다음에 평양옥을 다시 찾는다면은 배받이살을 먹어주고 난 후 ‘반탕’으로 마무리를 하겠다. 반탕은 보통탕 반그릇의 줄임말이다.


<파찌아빠>


& 덧 붙이는 말 : 보신탕집에 다니다보면 계산대 옆에 박하사탕 대신으로 살구씨를 놓아둔 집을 종종 보게된다. 살구씨는 육류의 소화를 돕고,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성질이 있단다. 특히나 개고기를 먹고 채한 경우에는 살구씨를 먹어주면 직효라고도 한다. 음식궁합으로 치면 돼지고기와 새우젓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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