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몇가지야? 그릇수에 압도되어 먼저 가짓수부터 세어본다. 청국장 빼고 자그마치 스물아홉가지.
곡성군 곡성읍에 있는 '산채식당'의 산채정식 밥상이다. 가짓수를 딱히 정해놓은 것은 아니라서 서른가지를 훌쩍 넘어갈 때도
많단다. 가짓수로만 생색내는 것은 아니다. 반찬들이 다 생기가 돌고 정갈해서 젓가락 대기 전에 눈이 먼저 즐겁다.
산채정식이라면 갖은 양념으로 손맛이 포옥~ 배이게 조물조물 무쳐내는 온갖 나물로 승부하는 것. 나물들중에서도
모양과 맛을 제대로 내기 힘든 가지나물로 판정을 내려본다. 설익어서 뻣뻣하지도 너무 물컥찔컥하지도 않다. 알맞게 익은
가지에 양념간이 고루 배어들어 있다. 그러니 미나리 취 도라지 쑥갓 고사리 감자대 고춧잎 같은 다른 나물들도 맛있지 않을 리
없다. 주인 김은례씨는 "딴집에서는 조미료도 많이 넣고 식용유 많이 넣어서 나물 무친다는디 나는 조미료는 아주 쬐께 시늉으로만 넣고
참기름이고 마늘이고 안 애끼고 써부네"라고 말한다. 깨 다섯되 정도 참기름을 짜도 일주일을 못넘기고 동이 난다니 나물에 고소한 참기름맛이 깊이
배어들 밖에.
방앗잎 부추 고추 넣어 부친 부침개맛도 특별하다. 요즘엔 맛보기 힘든 방앗잎 특유의 진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에겐 향이 강해서 비위에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어린시절 어머니가 마당에서 방앗잎 몇장 뜯어 부쳐주던 부침개에
얽힌 추억을 지닌 이들이라면 분명 '그래, 이 맛이야'라고 반가워할 맛이다. 산채식당의 방앗잎 역시 어디서 따로 사오는 게 아니라
마당에 심어놓은 것이다. 부침개 맛도 기름기 거의 없이 담백하게 부쳐내는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 그대로이다. 추억의 맛은 또
있다. 쌉쓰름해서 입맛을 돋우는 고들빼기 김치라든지, 고춧잎으로 담군 김치라든지...
공기밥이 아니라 돌솥밥이 나오는 것도 이 집 산채정식의 특징. 감자,
완두콩, 대추 같은 것들이 푸짐하니 들어있어 반찬없이 밥만 먹어도 맛있다. 또하나 이 집의 자랑거리는 숭늉이다. 모주
색깔처럼 진하게 우러나온 숭늉. 밥을 솥바닥에 놀짱놀짱하니 눌려 한번 끓인 다음 그 누룽지를 믹서에 갈아서 또 끓여낸 것이다.
그렇게 공력을 들여서 맛이 진하고 툽툽하다. 여름에는 숭늉이 쉬기 쉬우므로 건너뛸 법한데 손님들이 서운타 할까봐 사시사철 숭늉을 끓여
주전자째 건네주며 맘껏 드시라 한다. 밥 잘 먹은 뒤 그냥 대충 구색으로 내놓은 물탄 수정과나 식혜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수한 숭늉으로 마무리하는 맛이 정겹다.
메뉴(가격) 산채정식=1만원, 비빔밥=5,000원,
민물장어(1인분)=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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